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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가 우리땅인 이유, 국내외 문헌자료로 보다!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 국내외 문헌자료로 보다! ■ 독도는? [지리적으로] 예로부터 울릉도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도서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는 "울릉도와 독도,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울릉도에서 독도를 바라볼 수 있는 주요 관측 지점(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울릉도 사동 새각단에서 바라본 독도(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독도에서 바라본 울릉도(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역사적으로] 독도가 대한민국의 고유영토라는 사실은 『삼국사기』, 『팔도총도』등 다수의 옛 문헌과 지도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만기요람』에는 "독도가 울릉도와 함께 우산국의 영토였다"고 기록 되어 있고, 과거 일본 정부도 독도가 우리 한.. 2023. 6. 28.
독도관련 국내외 문헌자료 - 일본 고지도의 독도 일본 고지도의 독도 ■ 삼국접양지도 ▲삼국접양지도(1785)(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1785년 하야시 시헤이의 『삼국통람도설』에 첨부된 5장의 부도 가운데 하나입니다. 지도에서 국가를 구분하기 위해 조선은 황색, 일본은 녹색 등으로 채색을 달리했는데요. 울릉도와 독도는 한반도와 같은 황색으로 채색하였습니다. 또 그 옆에 “조선의 소유다 [朝鮮ノ持也] ”라고 적어 이들 두 섬이 조선의 영토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 조선동해안도 ▲조선동해안도(1876)(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러시아 해군 팔라다호의 장교들은 1854년 한반도 동해안을 세밀하게 측량했으며, 그 성과로 해군부 수로국은 1857년에 「조선동해안도」 를 제작했습니다. 이 지도를 바탕으로 일본의 해군 수로부는 1876년 「조선동해안도」 를 번역.. 2023. 6. 28.
독도관련 국내외 문헌자료 - 서양 고지도의 독도 서양 고지도의 독도 ■ 조선왕국전도 ▲조선왕국전도(1732)(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프랑스의 왕실지리학자 당빌이 제작한 한국 지도입니다. 울릉도(鬱陵島)를 Fan-ling-tao, 독도 [于山島] 를 Tchian-chan-tao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독도가 바르게 표기되지 않은 것은 우산도(于山島)의 우(于)를 천(千)으로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독도가 내륙 가까이에 표시되어 있지만 한국의 영토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조선전도 ▲조선전도(1846)(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한국인 최초의 신부 김대건이 외국 선교사들을 위해 만든 한국지도로 지명을 라틴어로 표기하였습니다. 베이징에 있던 프랑스 영사 드 몽티니에게 이 지도가 전달되면서 한국이 서양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지도에서 울릉도는 Ou.. 2023. 6. 28.
창덕궁에 대해 알아보아요 창덕궁에 대해 알아보아요 창덕궁은 조선 시대 궁궐 가운데 하나로, 서울 종로구에 위치해 있습니다. 북쪽에 있는 비원 후원과 함께 사적 제122호로 지정된 중요 문화재입니다. 태종 초기에 별궁으로 건립되었으며, 궐내 인정전, 선정전, 소덕전 등 다양한 전각과 돈화문이 있는 본궁처럼 사용되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대부분 궁이 불타 버렸지만, 1608년 광해군 시대에 창덕궁이 경복궁 대신에 재건되어 왕들이 거처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1868년 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하기 전까지 창덕궁은 정궁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광해군 시대에 재건된 궁에서 몇 차례 화재와 인조 반정으로 헐리고 다시 지어지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창덕궁은 인정전이 있는 정전과 주변 전각, 대조전을 중심.. 2023.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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